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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례 뇌종양 수술에도 완치는 요원조계사·화계사·일일시호일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항암치료 후 집으로 돌아온 구릉씨는 앉아있기조차 힘들어 누워지낸다. 네팔인 쉼터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 크리스나씨의 간병이 구릉씨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섬 쁘라사드 구룽(40)씨는 네팔의 시골마을 출신이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두 명의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여유있게 키우고 싶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을 품은 채 산업연수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입국했다.

한국에 도착해 취직한 곳은 김포에 있는 알루미늄 주물 공장이었다. 매일 새벽 700℃가 넘는 용광로, 알루미늄이 부글부글 끓는 곳으로 출근했다. 그는 용광로에서 알루미늄 녹이는 일을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일해도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고, 잠깐만 있어도 고열에 숨을 쉬기 어려웠다. 바닥이 너무 뜨거워 신고 있는 신발이 녹기도 했다. 잠시 한눈을 팔면 용광로에서 액체 알루미늄이 튀어 화상을 입기도 했고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 쉴 틈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면 기진맥진한 채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숙식은 공장에서 해결했다. 쉬는 날도 없이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했다. 동료들은 쉬지 않고 바뀌었다.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힘든 일을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나마 말이 통했던 산업연수생 동기가 네팔로 돌아가자 구룽씨는 말할 이가 없었다. 사무친 외로움 속에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나날이 커져갔다. 고독감을 버티게 해준 희망 또한 가족이었다.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변변치 않은 벌이였지만 아끼고 아껴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몇 해만 더 일을 하면 그리운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살았다.

네팔인 구룽씨, 뇌암 발병
매일 통원하며 항암치료
다니던 회사에서도 잘려
보험 안돼 치료비 막막

그러나 시련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6월4일 구룽씨는 일하던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지난 해 네팔에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건너온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때였다. 병명은 뇌 역형성형 성상세포종. 뇌암이었다. 한국에 들어올 때 한 건강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에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의사는 종양제거를 위해 당장 수술해야한다고 했다. 절망감이 온몸을 덮쳤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낯선 이국땅의 병원 수술대 위에서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자 회사에서는 구룽씨를 바로 퇴사시켰다.

한 번의 수술 후 뇌 속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해 재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돌아온 건 상상이상의 치료비와 더 이상 병원에 머물 수 없다는 통보였다. 퇴사로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처음 치료비는 500만원이 넘었고 매일같이 받아야 하는 항암치료는 하루에 50만원이 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의 네팔 커뮤니티에서 구룽씨를 위해 모금하고 의료보험 지원도 도왔다. 십시일반 모아준 돈을 치료비에 보탰지만 일주일에 60만원이 넘게 나오는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장거리 이동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입원비조차 없어 날마다 통원하며 언제 완치될지 기약도 없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고향의 가족들에게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올 때 진 빚과 날로 늘어나는 치료비에 그나마 집에 보냈던 돈도 다시 돌려받아야 했다. 구룽 씨가 보낸 돈으로 생활하던 가족들도 점점 궁핍해지고 있다. 현재 구룽씨는 동대문 네팔인 쉼터에 머물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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