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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7mm 종양…제거했지만 두통·경련 시달려계속된 통증에 진단 받아보니 뇌수막종…남은 병원비도 1300만원

2003년 한국 온 스리랑카 출신 사만씨…농장·축사·공장서 노동
계속된 통증에 진단 받아보니 뇌수막종…남은 병원비도 1300만원

가난은 평생 사만(50)씨 가족을 괴롭혔다. 스리랑카에서 온 이주노동자 사만씨는 아버지를 일찌감치 여의었다. 울타리가 사라졌다. 세상에 피붙이이라곤 사만씨와 어머니 단둘뿐이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했다. 어머니의 벌이는 고정적이지 못했다. 공사판에라도 나가려했으나 한쪽 발에 장애가 있어 받아주질 않았다. 일거리가 없을 때는 이웃에서 먹을 것을 얻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만씨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업했다. 장애가 있음에도 받아준 사장에 대한 고마움으로 10년을 다녔다. 그가 일하고 받은 돈은 매달 10만원 남짓.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마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제는 마음 놓으시라”고 어머니와 한 약속이 무색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바로 한국이었다. 공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아 비행기 표를 마련해 2003년 한국 땅을 밟았다. 사만씨의 길고 긴 한국생활의 시작이었다.

처음 일한 곳은 경상도에 있는 사과농장이었다. 농장 근무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당시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형편없었다. 무조건 사장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약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야 했고, 거름을 뿌렸다. 12시간이 넘도록 땡볕 아래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일했다. 온몸에 파스 냄새가 마를 날이 없었다. 결국 스리랑카 공동체를 통해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축사 일이었다. 월급이 조금 올랐다는 것을 제외하면 농장과 다를 바 없었다. 축사는 더러웠고, 바닥은 가축 배설물로 가득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악취에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고국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텼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취에 코가 무뎌졌고 누구보다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닦으면서 소들을 돌봤다. 이렇게 5년이 흘렀다.

그쯤 사만씨는 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리랑카 동료들과 평택으로 올라왔다. 그곳엔 마하위하라 스리랑카 사원도 있었고, 스리랑카인들의 커뮤니티도 조성돼 있었다. 그는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한때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자동차 시트 제작 회사에 근무했다. 일처리가 빠르고 꼼꼼해 우수직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공장 환경은 깨끗했고 조건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사장님의 배려였다. 이주노동자라고 막 대하는 일도, 월급을 주지 않거나 적게 주는 일도 없었다. 자동차 공장에서의 만족한 생활이 쭉 이어질 것만 같았다.

공장에서 일한 지 11년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다. 경제는 갈수록 악화됐고 그 여파는 공장에까지 미쳤다. 사만씨의 출근 횟수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공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갈 곳이 없어진 사만씨는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건설 현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수입이 많을 때는 10만원도 받았으나 벌이가 없는 날도 있었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사만씨의 친구가 방 한 켠을 내줬고,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사용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두통약도 소용없었다. 팔과 다리에 심한 경련이 일어났고, 마비가 왔다. 반복되는 증상에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MRI와 피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뇌수막종이었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덮는 막에 발생하는 암으로, 뇌에선 7mm 종양이 발견됐다. 의사는 곧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마땅한 수입원이 없던 터라 모아놓은 돈을 수술비로 쓸 수밖에 없었다.

종양을 제거하지 않으면 시력과 언어 능력까지 잃을 수 있었다. 결국 두개골을 갈라 종양을 제거했다. 수술 경과가 좋았고 중환자실에서 3주 동안 회복 후 퇴원할 수 있었다.

이제 완쾌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대 위에 오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수술 후유증으로 기억력 감퇴와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경련과 끔찍한 두통이 계속됐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조직 검사 결과 비정형 수막종으로 확인됐다. 재발 가능성도 매우 높아 약물 치료와 지속적인 추적 검사가 필수였다. 이렇게 살아야할까 싶었다.

이런 사만씨에게 손을 내민건 아산 마하위하라 사원 주지 담마끼띠 스님이었다. 사찰에 머물 것을 권하며 치료비 모금 캠페인에도 적극 나서주었다. 덕분에 4000만원에 달했던 병원비는 1300만원 가량으로 줄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스리랑카인들이 고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움에도 사만씨를 위해 기꺼이 모금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납부해야 할 병원비는 줄었지만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은 사만씨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액수다. 모아놓은 돈은 바닥나고, 더 이상 가난한 도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민망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은 커지고 불현 듯 찾아오는 통증에 숨쉬는 일조차 버겁다.

한국은 언제나 친절했고 따듯했다고 말하는 사만씨, 그가 병을 이겨내고 오래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불자들의 관심과 애정 어린 손길이 간절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56-5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일일시호일  kkkm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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