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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아빠의 한숨 "병원비 빌려 아이살렸지만…"김포 정착 줌머인 에케이몽씨

방글라데시 출신 줌머인 에케이몽씨.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후 오랜 연인이었던 프리티씨와 혼례를 치른 지 10개월, 지난 10월2일 아들 명비가 태어나면서 가족은 둘에서 셋이 됐다. 이름 ‘명비’는 서울남부출입국관리소에서 만난 한 스님이 지어주셨다.

부처님께 무병 기원했던 아기
기저귀 값 걱정할 형편에도
한국어 배우며 희망 쌓는 중

“갓 태어난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 고향을 떠나 도망자로, 또 난민으로 떠돌며 살았던 지난 4년간의 고단함이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어요.”

방글라데시 출신 줌머인 에케이몽(44)씨는 아기를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짓다가도 금세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졌다. 어렵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꿈과 희망을 키우며 정착한 한국 땅이지만, 당장 아기의 기저귓값을 걱정해야 할 만큼 절망적인 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내 프리티(34)와 아기를 떠올리면 어깨는 더욱 처진다.

에케이몽은 4년 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향 치타공을 떠나 미얀마로 가야 했다. 연로한 어머니와 수년간 운영하던 보육원을 내버려 둔 채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넜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도망자 신분이었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경을 넘을 수 없었다.

에케이몽은 줌머인 거주지인 치타공 지역의 자치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부군으로부터 감시를 받던 터였다. 그러던 차에 또다시 시위가 일어나자 정부군은 그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군사장비가 발견됐다는 누명을 씌웠다. 집과 보육원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수배가 내려지자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미얀마에 단란한 보금자리는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한국’이 떠올랐다. “한국은 수없이 많은 탄압을 받은 나라였잖아요. 또 불교가 널리 퍼진 나라이기 때문에 탄압받는 우리 줌머인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요.” 한국을 선택한 이유였다. 싱가포르를 거쳐 2015년 5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줌머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김포 양촌읍에 자리를 잡고 바로 난민 신청을 했다. 다행히 신청 2년 반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에케이몽은 “줌머인을 위한 활동과 보육원 운영 등이 참작돼 빨리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도 나와 남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하면서, 자신의 가정을 돌보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에케이몽의 한국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포 가구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아내 프리티를 한국에 데려올 생각에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리고 드디어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 하는 집을 마련했다. 허름하지만 에케이몽 가족에겐 둘도 없이 따뜻한 첫 보금자리다.

아내 프리티는 에케이몽이 도망자 신분일 때도, 난민생활로 연락이 끊겼을 때도 한결같이 기다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자마자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이 오랜 연인이었던 프리티와의 결혼식이었다. 2018년 1월, 방글라데시도 한국도 아닌 인도에서 간략한 서약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가족이 됐다. 결혼식 후 에케이몽은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곧장 한국으로 왔고, 프리티는 7개월 뒤에야 남편 곁으로 올 수 있었다. 뱃속에 7개월 된 아기와 함께였다. 지난 10월2일 아들 명비가 태어나면서 가족은 둘에서 셋이 됐다.

하지만 가족이 둘에서 셋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당장 아기를 먹이고 입히는 최소한의 돌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아내가 임신 중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때문이었다. 한국에 온 프리티는 임신 7개월이 넘어서야 처음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그들에게 병원비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뱃속 아기의 심장 소리가 좋지 않다는 의사 소견에 몇 가지 진료를 받았을 뿐인데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불어나는 빚이 무서워 더 이상의 진료를 포기했다.

그런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기의 건강을 바라는 기도가 전부였다. 집 한쪽에 부처님을 모시고 하루 2번 청수물을 올리며 아기의 건강만을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부처님 가피였을까. 다행히 아기는 작지만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새 생명 탄생의 기쁨도 잠시, 이들 앞에는 예상치 못한 수술로 인해 발생한 300만원이란 숫자의 병원비 고지서가 놓여졌다. 며칠 더 입원해야 했지만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병원비가 무서워 바로 퇴원했다. 그렇게 또다시 친구들에게 빚을 졌다. 그래도 “2.2kg의 솜털 같은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기쁨이 일었다”고 말하는 에케이몽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일용직인 에케이몽은 한 달에 100만원 넘게 벌 때도 있지만, 일감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한국에 오자마자 출산으로 수술까지 한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를 집에 두고 온종일 나가 있을 수가 없어 최근엔 그나마 일을 하지도 못했다. 입이 하나 늘었으니 돈을 더 모아야 하는데,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황에서 생활은 더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갓 태어난 아들과 자신만 믿고 한국에 온 부인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시리고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지금 수중에 있는 단돈 30만원으로는 당장 필요한 기저귀와 끼니를 해결하기도 버겁다.

그래도 에케이몽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국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적응하고,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든든한 가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가 꿈꾸는 삶이 한국사회 일원으로 안정된 일터에서 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누는 것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난민 아버지 때문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난민이 됐지만 먼 훗날에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라며 아기를 돌아본 에케이몽은 언젠가 당당한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아들 손 잡고 평화로운 고향에 방문할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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