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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만든 시련, 남은 것은 아이 향한 어미 마음뿐조계사·화계사·일일시호일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네팔 이주 여성 수남씨는 당장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지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돌보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쫓기듯 한국으로 건너왔다. 네팔에서의 소박한 삶을 꿈꿨지만 그런 꿈마저 가난 앞에서는 사치였다. 네팔 출신 스물 여덟살 수남씨는 다른 결혼이주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네팔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생활수준이 높다고 알려진 한국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먹는 입을 덜고 혹시나 고향의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네팔 결혼이주여성 수남씨
가난 탓에 한국서 결혼생활
남편 음주·폭력에  이혼 결심
6개월 아들 돌보며 자립 준비

20살이나 많은 남편이었지만 선해보이는 인상과 지인의 소개라는 믿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한국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정든 고향을 떠나 얼굴만 아는 남자와 결혼해 낯선 나라에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의 현실은 가혹했다.

한국에 들어온 첫날부터 남편의 음주와 폭력, 강제 성관계가 시작됐다. 일을 마치고 잔뜩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은 온갖 욕설을 하며 물건이 손에 잡히는 대로 수남씨에게 던졌다. 남편의 폭력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수남씨에게는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 같은 밤이 계속됐지만 아이를 위해 감내했다.

아들 푸르부가 태어나자 수남씨 에게 희망이 생겼다.

“푸르부가 엄마를 알아보고 눈을 맞췄어요. 옹알이를 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죠.”

아들의 재롱을 보면 아무리 힘든 일도 잊을 수 있었다. 아들의 환한 웃음은 수남씨의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웠다. 사랑하는 아들 푸르부는 수남씨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이자 삶의 목표가 됐다.

그러나 출산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의 폭력은 계속 됐고 날로 심해졌다. 그날밤도 마찬가지였다. 술에 취해 던진 물건에 맞아 푸르부가 다쳤다. 아이까지 위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서 더 참는 것은 바보 같은 일 이었다. 수남씨는 우선 근처의 쉼터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에게 불행한 가정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경찰서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남편과도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네팔로 돌아가 아픈 기억을 모두 잊고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네팔로 돌아가면 친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혼자서 자립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수남씨는 비행기 값은커녕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졌을 때 한국 내 네팔 커뮤니티 ‘우먼포우먼’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결혼이민자와 이주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들은 홀로 고통을 감수하던 수남씨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줬다.

좁은 옥탑방이지만 아들과 단둘이 지낼 수 있는 평화로운 보금자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수남씨는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는 수남씨가 자립해 아이의 양육비는 물론 집세를 마련해야 한다. 아이를 네팔로 보내고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시작해야 하지만 당장 수중에는 아이의 분유 값조차 없다. 수남씨는 “장애를 가진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은 너무 죄송해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며 “일하고 돈 벌어서 아이를 양육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를 위한 한국불자들의 자비온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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