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11.30 화 09:59
상단여백
HOME 소식지 이주민돕기 활동
복막염 반복에 수차례 생사기로…가족걱정에 눈물체중 40kg대로 줄어…기약 없는 치료에 병원비 3000만 원 훌쩍
계속된 수술과 치료로 찬디라씨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고 75kg이었던 몸무게는 40kg대로 줄어들었다.

캄보디아 출신 찬디라씨 장 천공에 4차례 수술…위험 고비 넘겨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찬디라(31)씨가 한국행을 선택한 건 ‘가족’때문이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연로한 어머니, 몸이 약한 누나와 형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지인이 유리공장을 소개해줬고, 어렵사리 일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며 받는 돈은 9만원 남짓. 5년을 넘게 일해도 월급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갈수록 집안 살림은 더 궁핍해져갔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돈을 더 벌어야만 했다. 그렇게 고향을 뒤로하고 2018년 8월 한국 땅을 밟았다.

찬디라씨는 군포의 한 철판조립공장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열심히 일했다. 첫 월급은 200만원, 캄보디아에서 받았던 돈의 20배가 넘었다. 고향으로 보내는 돈이 많아지면서 누나와 형은 병원을 더 자주갈 수 있었고 어머니도 더 이상 남의 밭에서 아픈 허리 굽히며 일하지 않아도 됐다. 찬디라씨의 한국 생활도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올해 6월 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철판을 조립하고 있던 찬디라씨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의식을 잃고 공장바닥에 쓰러졌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옮겨져 각종 검사를 받았다. 장 천공과 복막염이었다. 장에 구멍이 뚫려 음식물 등이 복강 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복막에는 이미 염증이 생겨 배 전체로 퍼진 상태였다. 의사는 염증이 장기 곳곳에 퍼져 위독한 상태라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곧바로 터진 장을 봉합하고 농양제거와 인공항문 수술을 받았다. 이후로도 2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 약물치료까지 병행했지만 몸은 좀처럼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8월 초 복막염이 재발하면서 다시 수술대 위에 올랐다.

“4번째 수술 때는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금식도 두 달 넘게 이어졌다.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몸은 점점 야위었고 75kg이었던 몸무게는 40kg대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힘이 없어 일어 설 수도, 뒤척일 수도 없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볼 뿐이다. 회복이 더딘 탓에 대장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배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의사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워낙 재발이 잦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퇴원은 어렵다고 했다.

완쾌 기약 없는 입원치료가 계속되면서 야윈 찬디라씨의 얼굴엔 더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3000만원이 훌쩍 넘는 병원비 때문이다. 아끼고 아껴도 모으기 힘든 금액일뿐더러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외하고 그동안 벌은 돈을 모두 고향에 보낸 탓에 수중엔 돈도 없다. 소식을 접한 캄보디아 노동자들과 군포 캄보디아 법당 린사로 스님이 SNS를 통해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거액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오늘도 병원비는 미납상태에서 점점 늘어나고만 있다.

엉망이 된 뱃속보다도 찬디라씨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캄보디아에 있는 가족이다. 찬디라씨가 한국에서 보내는 돈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가족 걱정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혹시나 걱정할까 싶어 가족에게는 입원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자책감에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저는 빨리 나아 다시 돈을 벌어야만 합니다. 엄마와 누나, 형이 모두 저만 기다리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찬디라씨의 큰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일일시호일  kkkma@beopbo.com

<저작권자 © 일일시호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